저는 55세고, 요양보호사 일을 하고 있는 이기윤(가명)이라고 합니다. 저는 좋아하는게 뭐냐는 질문에 답하는 걸 제일 어려워하는 사람이에요.
이전에 공장 일을 하다가 손이 망가져서 1년을 쉬게 됐어요. 그러다 근로복지공단인가 거기서 여는 취업박람회도 가보고 정부 지원으로 기술 같은 걸 배울 수 있는 프로그램이 있잖아요. 거기서 회계 경리 교육하는 프로그램도 참여했었는데, 다 젊은 분들이 모이더라고요. 30–40대. 담당자에게 ‘혹시 제 나이에도 취업이 가능할까요?’ 물었더니 ‘솔직히 말씀드리면 어려울 것 같다’ 했어요. 그래서 접었지요. 도서관 사서 일도 알아봤었는데 6개월 이상 근무가 어렵고, 또 가계 소득 기준이 있어 제가 애매하게 빗겨났어요.
그 당시 아줌마들 사이에서는 요양보호사 얘기가 많이 나왔어요. 저도 요양보호사 자격증 교육 프로그램을 등록해서 학원에 다니게 되었죠. 코로나 때문에 원래는 2월인가 3월부터 개강을 해야 하는데 한 달이 늦어졌어요. 보통은 6주 만에 끝나는 수업인데 시험 치는 것까지 포함해서 6개월은 걸린 것 같아요. 11월에 자격증이 나와서 그때부터 요양보호사 일을 하게 됐어요.
처음 일하러 온 나를 센터장이 왜 그 집으로 보냈는지는 모르겠어요. 세상에 루게릭병 환자인 거야. 말을 한마디도 할 수가 없어. 고개만 좀 끄덕일 수 있어요. 처음 2주간 그분을 보고 나니 잠이 안 오더라고요. 대상자분은 할머니인데, 그 집 할아버지가 또 사업을 하다가 말아먹었나 봐요. 할머니가 그리 계시니까 할아버지는 밥도 못 드셔서 제가 계속 음식을 했어요. 일을 하면 할수록 몸이 너무 힘들어졌어요. 한 번 의사소통을 하려면 열 가지 이상을 물어봐야 해요. 또 침이 넘어가면 안 되어서 침도 계속 빼줘야 하고 거기서 가사 노동도 해야 하고요. 가서 잠시도 앉아있을 틈이 없었어요. 내가 앉아있으면 5분도 안 되어서 힘들다는 사인을 보내셔. 가려워서 그럴 때도 있고 목이 말라서 그럴 때도 있고, 밥도 못 드셨거든요.
처음에는 목욕을 시킬 때 할아버지가 할머니를 욕실로 옮겼는데, 점점 나한테 옮기는 일을 부탁하시더라고요. 할머니를 들어 욕실로 옮기고 돌아온 날 밤에 제 허리에 문제가 생겼다는 걸 알았어요. 회사에 요구해 산재 처리를 받긴 했지만, 당장 일을 이어서 할 순 없는 상황이었어요. 지금은 같이 요양보호 교육을 받은 분의 제안을 받아 요양보호 시설에서 일해요. 어제 처음 다녀왔어요.
요양보호사 하기 전에는 어떤 커리어를 가지고 계셨나요?
먼저 대학에 들어가 있던 친구가 과외식 학습지 일을 받아서 하고 있었는데 그걸 나한테 추천해 줬어요. 그 일을 받아서 하게 됐죠. 이과를 나왔으면 수학을 했으면 편했을 텐데 영어를 가르쳤네. 거기에서 근무를 좀 하다가 그만두고 고향으로 돌아와 공무원 준비를 해서 시험을 쳤는데 커트라인 3점 차로 떨어졌어요. 난 1년 더 공부해 보겠다고 했는데 집에서는 그게 답답해 보였나 봐요, 당신들이 그렇게 여유가 있었던 것도 아니라.
그러다가 공무원 준비를 접고 학원에 입사했어요. 그곳에서도 영어를 가르쳤는데, 그 학원에 문제가 많아서 다른 학원으로 이직했죠. 이직한 학원에서 일하면서 지금의 남편과 소개팅을 했어요. 당시 내 나이가 스물여덟이고 남편은 서른이었는데, 신랑 쪽에서 약혼을 서두르자고 해서 약혼을 했어요. 그런데 학원에 결혼 얘기를 꺼냈더니 그때부터 나를 내보낼 궁리를 하더라고요. ‘너는 결혼할 거니까 당연히 그만둬야지’ 하는 분위기. 원래 제가 두 반을 맡고 있었는데 직무나 권한을 하나둘씩 뺏어버리는 식이었어요. 원장에게 말을 꺼내기 전에 부원장에게 결혼 얘기를 했는데 그 소식을 뒤늦게 접한 원장은 내가 결혼한다는 얘기를 전달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그 부원장을 잘라버렸어요. 강사들이 모두 있는 앞에서. 제가 도저히 버틸 수 없는 분위기를 만든 거죠.
그 이후 방문학습지 일을 2년 정도 하다가 첫째 아이를 임신하게 됐어요. 당시에는 육아휴직 같은 것도 보장되지 않는 환경이었고, 아이를 낳고 나니 더더욱 일을 하기 어려운 상황이 됐어요. 아르바이트를 할 여건도 안 되고 주변에 일자리를 연결해 줄 만한 인연도 없었어요.
97–98년 경제 위기로 남편이 회사를 나오게 되면서, 맞벌이를 하지 않고는 살 수 없는 형편이 되었어요. 큰아이가 세 살 때인가 남편이 PC방 사업을 시작해서 어린이집에 아이를 맡기고 PC방 일을 돕게 되었는데 남편과 같은 직장에 다니면서 계속 부딪히기도 하고, 큰아이가 계속 아픈 거야. 소변이 포도주색으로 나오더라고요. 아이가 중이염이랑 감기를 1년 내내 달고 살았는데 그런 모습을 보면서 일을 그만두게 됐어요.
그리고 2007년 즈음 아파트 분양을 받는 게 유행이라 저도 분양을 받았는데 거기 융자금까지 더해져 큰일이 났죠. 그때 내 나이가 마흔하나. 취직을 할래야 어디에서 써줘. 당시 아이가 구몬학습을 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학습지 선생님이 과목을 추가하자고 하는 거예요. 선생님한테 나는 그럴 형편이 안 되는데, 차라리 나를 취직시켜주시면 안 되냐 했죠. 그 일도 원래 만 나이로 마흔까지만 허용이 됐는데, 제가 그 나이를 넘었잖아요. 무슨 대전 본사까지 가서 허락받아 어렵게 취직을 했는데, 강의도 안 주고 학습지만 풀게 했어요. 영업만 하게 하거나. 또 오랜만에 일을 하니까 하혈을 막 하더라고요. 그래도 집에만 있으면 주위에서 무시하는 것 같고 해서… 이 악물고 버텼어요. 그런데 그렇게 오래 버티고 일해서 적응을 해가던 참에 남편이 병이 났어요. 그때 너무 충격을 받아 직장을 그만뒀고 우울증이 왔어요. 그렇게 1년이 흘렀어요.
아이가 크면서 돈이 많이 들어가기에 보험 교육을 받아 보험회사에 입사했어요. 거기서 2년 정도 근무했고요. 보험회사를 그만두고 나서는 지인이 수학학원을 소개해 줬는데, 그때 내 나이가 거의 쉰이었고 이미 나는 학원가에서 돌아가는 내용을 따라가기 어려운 상황이더라고요. 학원에서 계속 저를 구박하는 분위기였고 이래저래 매사에 뭔가 대우를 안 해주는 느낌. 애초에 다른 선생님들은 월급이 100만 원씩인데 나는 80만 원을 조건으로 들어갔는데도요. 도저히 더 버틸 수가 없을 것 같아 그만두었죠.
그래도 가만히 있으니까 답답하고 뭔가를 해야겠다 싶어 공장에 들어갔는데, 다부진 체력이 못 되어서 1년 하고 나니 손이 망가졌어요. 한 동작을 반복적으로 끊임없이 하면서 생긴 병이라 하더라고요. 아프니까 일을 더 할 수 없어 또 1년을 쉬게 됐어요.
천문학과를 나왔어요. 제가 상업 고등학교를 나와서, 2년 정도 아르바이트를 하며 학비를 벌어 대학을 간 거예요. 부모가 여유가 없어서 학비를 대려면 시골에 있는 땅을 처분해서 팔아야 했을 정도였거든.
저는 그냥 공부가 너무 좋았어요. 수학도 재미있었고요. 별이 좋았고 우주에 대해 공부하는 그 자체가 너무 좋았거든. 우주에 대한 이론, 물리 법칙이 서로 연결이 되잖아요. 당시만 해도 별이 정말 잘 보였는데. 어떤 별은 눈에 보이진 않지만 쌍성인 애들이 있어요. 지금도 가끔 뉴스에서 우주와 관련된 얘기가 나오면 무슨 말을 하는지 어느 정도는 알아들을 수 있어요. 당시에는 대학을 나와야 미래가 열리는 시대라고들 했는데요, 막상 대학이라는 게 돈이 없으면 너무 힘들더라고요. 이과 계통이라 컴퓨터가 없으면 뭘 할 수가 없었어요. 저는 컴퓨터 가게를 하는 동아리 선배한테 신세를 졌었는데 그마저도 매번 그럴 수는 없어서.
다시 과거로 돌아가 경제적 지원을 받을 수 있다면 좋아하던 공부를 이어가고 싶으신가요?
지금은 별로 그런 생각이 안 드는 게, 사람이 너무 좋아하는 걸 포기할 때는 아예 그걸 꺾어버리게 되잖아요. 내가 그쪽으로 더 이상 공부할 수 없겠다는 걸 알았을 때, 좋아하는 마음도 같이 접은 것 같아요.
제가 또 좋아하는 게 있다면… 제가 불교인데, 절에 다니면서 힘든 상황 속에서 어느 정도 나 자신을 다스릴 수 있는 힘이 생기더라고요. 집에서 종종 화선지를 꺼내놓고 붓펜 같은 걸로 불경을 써요. 또 그런 일에 손재주가 있어. 그러고 보니 중학교 때 그림 그리는 것도 좋아했어요. 만화가가 되고 싶었는데. 그 당시 시골에서 뭘 알아. 집에 찾아보면 그림 도구가 있을 텐데, 캘리그래피를 해보고 싶기도 하네요. 거기에는 그림도 들어가고 글씨도 들어가잖아요.
꿈에 대한 생각은 안 해 봤는데요. 내가 너무 자기만족하고 사는 거 아닌지 모르겠다 싶네요. 경제적으로 넉넉해져서 좋은 일을 많이 하고 싶어요. 제가 세상을 품고 살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