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부터 유치원에서 미술 교사로 일하는 중이에요. 같은 유치원에서 방과 후 돌봄은 10년 정도 되었고요. 미술 교사는 3월에 아이들을 모집해서 1년 동안 일주일에 두 번 방과 후 미술 수업을 하는 거고, 오후 돌봄 교사는 늦게 퇴근하는 학부모의 자녀들을 유치원에서 데리고 있다 저녁도 먹이고, 학부모가 퇴근길에 데리러 갈 수 있게 준비하는 일을 하고 있어요.
원래 논산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는데, 대전으로 대학을 와 미술을 전공했어요. 일하다가 유아교육과 자격증이 필요해서, 일하던 중 대학을 또 다녔어요. 사회복지 자격증도 그때 대학 다시 다닐 때 땄고요, 요양보호 자격증도 다시 땄습니다.
직장을 다니다가 결혼을 했고, 임신을 하면서 직장을 그만뒀고요. 아이들을 키우면서 아이들이 유치원 졸업할 무렵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저에게 알맞은 일이 주어지면 참 좋겠다는. 그런 기도를 한 기억이 나요. 아이들을 보내고 일을 해야 하니까, 아침 일찍 하지 않고 하는 일을 하면 좋겠다. 방문 교사 모집하는 데가 있어서 원서도 내고 면접도 보고 합격 연락을 받았는데… 그때 할머니께 도움을 요청했는데 몸이 편찮으셔서 계속 아이들을 돌봐줄 수는 없다고 해서 취소한 상태로 있다가, 둘째 딸이 일곱 살 때 어린이집 미술 교사가 됐어요, 우연찮게. 1년을 다녔어요. 그때가 다섯 살이었나, 둘째 딸이 너무 많이 울어서 그때 그것도 그만뒀어요. 송촌 2단지 어린이집으로 출퇴근했는데… 그다음에 유치원으로 다니게 되어서 지금까지 근무하고 있어요.
알맞은 일이 주어지면 참 좋겠다고 하신 건 어떤 마음이셨나요?
왜 그런 마음이 들었는지 모르겠는데 노는 것보다는 적당한 일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이 들었고. 아이들이 자라서 뭔가를 해도 되지 않을까, 그런 상태에 있다가 일을 시작하게 됐죠. 그래서 둘째 딸이 초등학교 1학년 때 처음 유치원 근무를 시작했어요. 돈이 들어오면 더 여유가 생기리라… 목표 의식이 있었던 것은 아니고, 어떤 일이 주어졌으면 좋겠다, 뭔가를 하고 싶다, 아이들이 커가는데 나도 적당한 일이 있으면 괜찮겠다, 일을 하면… 경제적인 일들을 하면 자식들을 풍족하게 할 수 있고, 그때 당시 더 큰 집으로도 가고 싶었고, 솔직히 그런 게 많았겠죠. 경제적인 보탬. 나의 발전을 위해서 이걸 꼭 해야 해 이런 성향은 아닌 것 같아요. 근데 막연한 ‘아줌마’보다는 뭔가를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어쨌든 지금까지 오래오래 하고 나니까, 옛날에는 아이들이 힘들게 하고 하면 짜증도 나고 혼내기도 했는데 아이들이 보기에는 나이 있는 선생님의 얼굴이 아줌마 같고 할머니 같을 수도 있는데, 아이들은 예쁜 것 같아. 세상이 많이 바뀌어서, 아이들을 존중하는 문화로 많이 바뀌었잖아요. 타의에 의해서도 있고, 나이를 먹으면서도 느끼는 것도 옛날보다는 아이들이 사랑스러운 것은 사실인 것 같아요. 옛날보다는 화를 덜 내고, 잘해주는 것 같아. 화를 내도 ‘유도리’ 있게. 솔직히 말하면, 어떤 부분에서는 돈을 벌어야 하기 때문에 아이들이나 학부모를 대할 때 그렇게 대할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요즘 아이들이 나라에서 적으니까… 오은영 박사님도 아이들 혼내지 말라고 하잖아요. 사실 현실에서는 그게 힘들어요. 아이들은 담임 얘기만 들어요. 특별활동은 자기 교실을 벗어난 교실이라서, 풀어질 수도 있고 자유를 찾고 싶은 거예요. 담임 선생님 눈을 벗어나서. 그런 것들을 잘 잡아주는 게 오래된 선생님의 능력 아니겠어요? 너무 안 들으면 ‘담임 선생님한테 얘기해야겠다’하면 아이들이 안 된다고 그러죠.
당시 여성 대부분 대학에 가던 상황이 아니었는데 대학에 진학하셨어요.
시골에 살았고 특별히 대학을 갈 형편이 아니었어요. 근데 내가 좋아하는 걸 하는 게 낫지 않을까 해서 대학을 가게 됐고, 대학을 가서는 해보니까 재밌어서 열심히 했던 것 같아요. 누가 공부하라 마라 하지 않는 세대였는데도 대학을 갔는데. 공부만 했다면 좋아하지 않았을 텐데, 공부만 파는 스타일은 아니니까… 도자를 만들어서 ‘충남 도전’에 냈는데 상도 받고. 염색 작품을 했는데 상도 받고. 그러니까 더 재밌고… 시험도 봤는데 1학기는 교양 과목도 봤는데 성적도 잘 나오고. 그러니까 흥미롭네? 재밌네? 그런 식으로 열심히 했던 것 같아요. 대전에서 특선도 몇 번 받고 그랬어요. 근데 그때도 지금 생각해 보면 끼가 넘치고 창의력이 넘치고 이런 건 아니었는데 작품을 만들면 깨끗하고 깔끔하게는 늘 나왔던 것 같아요. 천재라고 하잖아요, 그런 사람들은 끼가 넘치는 사람이 아닐까… 그런 끼가 있었으면 좋지 않았을까 생각해요. 그건 예체능을 하는 사람이라면 모두 그런 생각을 할 것 같아요. 그런 과정에서도 늘 성실한 게 저의 장점인 것 같아요.
대학을 졸업하고서 대학원을 가야 하나 고민을 했어요. 그때 대학 졸업하고 조교 일을 하고 있었는데 숙명여대로 대학원 간 친구가 있었어요. 그 친구가 저한테 대학원 한번 지원해 보라고 원서를 주더라고요. 원서를 받았는데, 작품 활동을 계속하고 포트폴리오를 만들어야 하는데 정보가 너무 없었던 거야. 내가 가고 싶어 했을 때는 대학원을 가는 친구가 별로 없었어요. 주변 사람한테 편하게 말했으면 좋았을 텐데 그때는 왜 그런 얘기를 못했는지 싶어요. 친구한테 원서를 받았지만 뭘 너무 몰라서 원서를 메꿀 능력이 없던 거예요. 작품을 미리미리 준비했어야 하는데. 근데 같은 과 남자애는 약아가지고 그런 준비를 진작에 하고 있었던 거예요. 제가 그 특선 받았던 작품을 낼 때 남자 동기가 그러는 거예요. “네 작품에 내 이름 좀 넣어줘라, 나 나중에 대학원 갈 때 쓰게.” 근데 저는 또 순진해서 그러라 그랬어요. 근데 저는 걔처럼 그런 ‘썰’을 풀 능력이 안 됐던 거죠. 그래서 그때 갔던 친구들이 참 부럽다… 주변에서 도와줬으면 지원했을 텐데… 오히려 요즘보다 예전이 대학원 가기 쉬웠을 수도 있는데. 그게 내 운이었지 않나 싶어요. 근데 부모님과 상의할 수 없었고… 상의할 수 있는 사람이 주변에 단 한 명도 없었어요. 대학원에 대해 다른 사람이랑 얘기해 보지 못했어요. 대학원을 갔으면 굉장히 힘들게 다녔을 테지만. 대학원 졸업을 했다면… 상황이 다르지 않았을까 싶어요.
대학원을 갔다면 어찌 됐든, 지금쯤이면 대학에서 강사를 했을 것 같아요. 그런데 대학원 준비하던 시기랑 결혼하려던 시기랑 겹쳤어요. 그래서 대학원이 간절하지 않았고… 그때 나이가 스물여덟이어서 빨리 결혼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고, 그래서 결혼을 선택했던 것 같아요. 근데… 그걸 후회하지는 않아요. 하지만 대학원을 갔으면 유치원 교사보다는 강사를 하지 않았을까, 하는 거죠. 일도 즐겁게 할 수도 있고, 힘들어하면서 할 때도 있었지만, 저는 꿈이 엄청 크고 이런 스타일은 아닌 것 같아요. 그런데 만약에 여유가 있는 상황이었으면 이것저것 많이 배우러 다녔을 것 같아요. 환경이 허락했다면 민화라든지, 골프를 배우든지, 지공예라든지, 취미로 하는 것들… 그런 걸 제가 좋아하는 것 같더라고요. 저는 그냥 가정을 꾸미고, 적당히 취미 생활하고 그런 스타일인 것 같아요. 근데, 욕심은 많은 것 같아요. 남편도 훌륭하고 좋은 남편이었으면 좋겠고, 자기 몫 잘하는 남편이었으면 좋겠고. 자녀들도 잘 키웠으면 좋겠고…….
근데 제가 성격 테스트를 해 보고 놀랐던 게, 저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우직한 당신은 검정빛이 도는 ‘갓’ 같아요. 일할 때는 꼼꼼하지만 사고방식은 단순하고, 안정을 추구해요. 혼자만의 시간이 즐거워요.” 몰랐는데, 남편이 다른 방에 있거나 일하러 갔을 때 너무 좋더라고요. 근데 이걸 몰랐어요. 남편이 평생 집에서 일했거든요. 그리고 다른 사람들을 만나고 돌아와서도 그렇게 편치만은 않았어요. “남을 따뜻하게 챙기지만, 사실 그렇게 남을 별로 신경 쓰지 않아요. 주목받는 일에 연연하지 않고, 당신을 냉정하다고 느끼는 경우도 있어요. 조금은 풀어져도 괜찮아요. 그렇게 할 때 당신의 책임감과 솔직함이 빛을 발할 거예요.” 글을 읽으면서, 맞아 이런 것 같아,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저는 근데 진짜 그랬어요. 남들이 하나도 신경 쓰이지 않았거든요… 아이 키우면서 그런 일들이 많았어요. 주변 부모들이 견제하던 시선 같은 거. 그래서 전 늘 자식들한테 그랬어요. 늘 실속을 챙기자. 실속을 챙기는 게 중요하다… 근데 이제 아이 키우고 이런 거 못할 것 같아요. 아, 근데 왜 이 말을 하는데 눈물이 나지…….
유치원 방과 후 교사는 퇴직금이 없다고 들었어요.
유치원 방과 후 교사는 사대보험은 되는 대신, 아침 여덟 시부터 근무하는 사람들이랑 다르게 퇴직금이 없어요. 돌봄 교사는 대부분 임금이 아예 안 올라간다고 봐야 해요. 1년 계약직이에요. 우리 유치원만 하더라도 원장 재량으로 고용 유지를 잘하는 편이지만… 다른 유치원은 다르겠죠.
노후 대책이 너무 걱정되는 상황이에요. 유치원은 퇴직금 같은 것도 없고 연금을 받으려면 몇 년 더 일야 하거든요. 그런데 지금 언니가 원장인데, 밑에 딸린 식구들을 챙기느라 일 그만 둘 나이를 한참 넘었는데도 관두지 못하고 있어요. 근데 언니가 말귀를 못 알아듣는 거야. 그런 상황이 될 때마다 너무 답답해요. 이 유치원에서 일을 하고 싶어도 원장님이 체력이 바닥인 상태에서… 스트레스를 받으면 몸이 너무 힘든 거죠. 상담도 해야 하는데… 나이를 먹어가는 게 화가 날 때가 있더라니까요. 오늘도 언니가 원장 일 하고 나서 오면서 ‘아, 기 빨려…’라고 했어요. 근데 계속 그래요. ‘너 때문에 내가 유치원 못 그만둔다.’ 그래서 제가 화를 냈어요, 남 핑계 대지 말라고. 몸이 힘들면 제발 그만두라고. 저는 이제 그런 말 듣기도 싫고 보는 것도 힘든 상황인 것 같아요.
유치원에서 가장 중요한 건 학부모의 생각이에요. 선생님에 대해 태클 거는 전화가 많이 오는데, 원장이 듣기에 그 선생님이 그렇게 하면 안 된다 싶은 일이 잦으면 그 교사는 같이 못 가죠. 젊은 선생님들이 임신하면 많이 그만두죠. 그러고 나서 다시 오는 건 자기 선택이에요. 유치원 교사는 보통 스물셋, 넷에 시작하는데 사실 유치원에 40대 이상이 없어요. 병설 유치원에 가거나 어린이집을 아예 차리는 경우도 많은데, 결혼하면서 그만두는 사람도 많아요. 그런데 경험해 보니까 나이 많은 선생님들이 잘 일을 안 하더라고요. 어떤 선생님도 다시 일하기로 했는데 둘째 낳아서 그런지 다시 안 온다고 하더라고요. 나이 많은 사람들을 오히려 선호하기도 해요. 경력이 적은 사람들은 아이들을 어떻게 돌볼지 잘 모르니까, 경력 있는 교사를 선호하기도 하지만… 근데 이상하게 잘 안 남더라고요.
학부모와 아이들이 제일 힘들죠. 요즘은 한둘만 키우기 때문인지 통제가 적어요. 몇 년 전부터 정부에서도 아이들을 통제하지 말라고 이야기하기 시작해서 최근에 그런 경향이 강해졌는데, 아이들 수가 적으니까 유치원에서는 아이들 하나하나가 너무 소중해졌고, 어린이집은 많은데 아이는 적으니까 절대 아이들을 제대로 훈육할 수 없는 거예요. 조금만 혼내도 바로 부모가 달려오고…….
그리고 어렸을 때부터 바깥 생활을 해서 그런지 아이들이 교사 말도 안 들어요. 훈육을 할 수 없는 상황인 거예요. 그런 부분이 너무 힘든 것 같아요. 질서가 없다고 해야 하나. 기본 생활 습관도 안 되어있고. 원아 모집이 너무 어려우니까 모든 것을 맞춰주는 상황만 돼서 선생님들만 힘든 거예요. 요구 조건만 많은 세대.
아까도 저녁밥을 먹이는데, 유치원에 유명한 남매가 ‘너무 맵잖아’ 하면서 우는 거예요. 근데 제가 그때 먹인 건 쌀밥이었거든요. ‘밥인데 왜 맵다고 해?’ 그러니까 담임 선생님이 ‘괜찮아요, 원래 잘 그래요’ 하시더라고요. 근데 아이들 거짓말 아주 잘하거든요. 학부모와 아이 사이에서 선생님들이 골치 아파지는 거죠. 아이들이 문제가 생겼을 때, 자기가 때린 얘기는 또 안 해요. 상대방 아이만 잘못했다고 하고…….
일을 20년 정도 했는데 어깨 아프고 손가락도 아프고… 어린이 의자에서 계속 고개 숙이고 작업을 하니까… 그리고 살림 같은 거 많이 하다 보니까 더 그런 것 같아요. 왜 그렇게 청소를 했나 모르겠어요. 목디스크도 있고. 목디스크 때문에 손이 아픈 거라고 하더라고요. 최근에 피아노 치는 사람이랑 얘기했는데, 목이랑 손이 아파서 안마 받았다고 했더니… 피아노랑 미술 같은 거 하는 사람들은 원래 아픈 거라고 하더라고요.